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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NI_NARA
여행이야기/하나되는 강원도

[영월여행]도성에서 멀리떨어진 첩첩산중의 영월에 단종이 잠든곳 장릉

by 무니.Muni 2012. 9. 5.

 

 

 

       장릉    강원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영흥리)

       조선 6대 임금인 단종(1441~1457)(재위 1452∼1455)의 무덤으로 강원도 영월에 있는 2009년 6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남한에 있는 왕릉 40기 중 39기는 서울과 경기지역에 위치해 있다. 대부분의 왕릉이 도성에서 100리(약 40㎞) 안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첩첩산중 영월에 위치한 능이 바로 ‘장릉’(莊陵)이다.

            

 

 

 

 

       영월의 ‘장릉’은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를 뺏기고 끝내 17살의 나이에 목숨까지 잃은 단종(端宗)이 잠들어 있는 곳.

       일반적으로 봉분과 일직선으로 놓이는 ‘홍살문’과 ‘정자각’이 봉분의 아래편에 위치해 있는 것도 특징이지요.

       봉분이 위치한 높은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홍살문에서부터 제례 때 제물을 올리는 정자각에 이르기까지

       어도(御道)와 신도(臣道)가 직각으로 꺾여서 이어지고,

       장릉의 정자각은 언덕의 정상에 위치한 봉분 옆을 향하는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1441년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태어난 단종은 이후 1452년 문종이 승하하자

        12살의 어린나이로 경복궁 근정전에서 조선의 제6대 왕에 즉위했으나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기 위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넘겨주고 상왕이 되었으나 그 후에 박팽년, 성삼문 등이 단종복위를 꾀하다가 발각이 되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사육신 사건 이 일어나자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되었지요.

        금성대군 "유"가 다시 단종복위운동을 사건으로 인해 1457년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지만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시신을 거두지 않자

        호장 엄홍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터를 잡아 봉분을 한 것이 아니라 선산에 몰래 암장하였는데,

        그래서 '장릉'의 봉분은 다른 왕릉과는 다르게 높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묘역도 좁은 것이 특징입니다.

      

 

 

 

 

 

 

 

 

 

         선조 13년(1580)에 이르러서야 상석과 표석, 정자각, 홍살문 등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는데요.

         그후 숙종 24년(1698)에 신위를 종묘 영녕전에 봉안하고, 능호를 ‘장릉’이라 하였답니다.

         추봉된 정릉과 경릉의 예에 따라 난간석과 병풍석, 무인석은 생략되어 왕릉의 형태를 갖추었구요..

 

 

 

 

 

 

 

 

왕릉에서 내려다 본 하늘이 무척이나 파랗고,

그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소나무들은

왕릉을 향해 가지를 뻗어있다고 합니다.

 

 

 

 

 

 

 

 

 

 

      

 

 

 

 

 

         초록이끼는 세월이 무상한듯...바위를 타고 그저그렇게....왕릉을 지키고 있고요.

 

 

 

 

 

                                       장릉에서 정자각으로 내려오는 기슭에 비추인 햇살도 어여쁘기만합니다.

 

 

 

 

 

       장릉은 무덤 제도에 의해 정해진것 외에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배식단사를 설치되어있구요.

       

       단종의 시신을 거둔 엄흥도의 정려비,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기적비 등도 있지요.

 

       왕릉에 사당, 정려비, 기적비 등을 갖춘 곳은 장릉뿐으로, 왕위를 빼앗기고 어린나이에 죽음을 맞은 단종의 비애가 느껴지는 곳입니다.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위(忠臣位) 32인, 조사위(朝士位) 186인, 환자군노(宦者軍奴) 44인, 여인위(女人位) 6인을 합해

 

      총268인의 위패를 모셔 놓은 장판옥(藏版屋).

 

 

 

 

 

      

 

 

 

 

 

 

 

 

 

 

       어도와 신도가 나란히 홍살문에서부터 제물을 올리는 정자각까지 이어지는데 일자형이 아니라 'ㄱ'형으로 꺽여있지요.

 

       살짝쿵 어도를 따라 걸어봅니다.

 

 

 

      

 

 

        제물을 올리는 정자각을 요리조리 살펴봅니다.

 

 

 

 

 

 

       모서리를 이루고 있는 돌의 섬세함이 눈에 띕니다. 

 

       일자형의 돌을 맞물린 줄 알았는데, 'ㄱ'형으로 깍아만든 모양이 특이해보입니다.

 

 

 

 

 

 

        영천靈泉

 

        둥근것은 하늘이요, 사각형은 땅이라

        솟아나는 샘물은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고,

        내려가는 것은 몰(생의 마감)이니 곧 하늘과 땅과 사람이라

        샘물(생명의 탄생) 한바가지를 얻기 위하에도

        예를 다하여 엎드려 절을 한 후

        첫번째 뜬 물은 하늘에 드리고

        다시 뜬 물은 제수로 사용한다.

  

       장지에서 관자리는 4각형으로 파고 묻고 난 후에는 봉분을 둥글게 함도

       곧 하늘과 땅과 사람을 말함이니

       이는 곧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생을 마감했을 때 돌아가셨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것이랍니다.

 

 

 

 

       먼 발치에서 영천을 바라봅니다.

 

 

 

 

 

 

 

 

 

 

 

       한 마리 왜가리가 장릉을 유유히 산책합니다.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