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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NI_NARA
여행이야기/비상하는 전라도

장수여행_주논개의 충절선양과 장수태생임을 알리는 의암사(논개사당)

by 무니.Muni 2012. 2. 13.

 

       논 개 [論介]

 

       임진왜란때  진주 남강 촉석루 에서 적장과 함께 순절한 충절의 여인이지요.

       그래서 논개하면, 경남 진주를 먼저 떠올리는데.... 

       본래 태생은 전북 장수여인이었네요. 

       1574 년 9월 3일의 4갑술(甲戌年 - 甲戌月 - 甲戌日 - 甲戌時)에 태어난 특이한 사주 였답니다.

       술(戌)은...우리말로 개로 발음하고, 경상도 말로 낳았다는 뜻의 논이 주씨 성에 붙어서...주. 논. 개.

       논개가 되었다고 합니다. 참 간단하게 지은 이름이죠? ㅎㅎ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하는군요.

 

       생의 마감은 나라를 위해 진주에서 했지만, 태어남은 이 곳 장수에서 하였기에

       장수태생임을 기리고, 충절을 선양하기 위해 1846년 논개생장향수명비를 세운 후

       1974년 현 위치로 자리를 옮겼답니다.

       매년 음력 9월 3일 논개사당에서 제례를 지내며 각종 문화행사도 열리다는 군요.

 

 

 

     ♣ 1593년 6월 김천일(金千鎰)·최경회·황진·고종후(高從厚) 등 관군과 의병의 결사적인 항전에도 불구하고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등이 이끄는 일본군에게 진주성이 함락되었다.

        일본군이 진주성을 유린하고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른 것에 의분한 논개는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벌인 주연에

        기녀로서 참석하여 술에 만취한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毛谷村文助]를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었다.

        이때부터 논개가 떨어졌던 바위를 의암(義巖) 이라 부르게 되었다.

 

 

 

 

 

 

 

 

 

 

 

 

 

 

 

 

 

 

 

 

 

 

 

        ♣  논개사당

 

         임진왜란 때 진주 촉석루에서 일본군 장수를 껴안고 의롭게 죽은 주논개(1574~1593)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의암사 라고도 한다.

         진주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제단을 마련해 추모제를 해오다가 영조 16년(1793)부터 나라의 지원을 받아 의암 부근에서 제를 올렸다.

         고종 5년(1868)부터는 3일간의 대규모 추모행사가 진행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다.

         그 후 1954년에 옛 기록등 자료 수집을 통해 초상화를 복원해 봉안하고, 당시 부통령이던 함태영이 직접 쓴 현판을 걸게 되었다.

         논개가 태어난 음력 9월 3일에 장수군민의 날로 정하고 큰 규모의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