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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NI_NARA
여행이야기/느낌있는 경상도

[합천역사여행]조선시대 교육기관 경남유형문화재 제228호 합천향교

by 무니.Muni 2013. 6. 20.

 

옛 교육기관 / 경남유형문화재 제228호 합천향교  

 

경남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

2012.06.01

 

어른이 되어서 ? 나이가 먹어서? 찾은 야로면 구정리 동네 한바퀴를 돌아보니,

어릴적 관심도 없던 역사유물이 바로 뒤에 버젓이 있었던 것이 놀라웁기까지 했다.

야로면사무소 뒷편에 이렇게 향교가 있었구나 ~~~ 

향교...합천향교....조용한 오후 한낮에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한동안 머물러본다.

 

 

 

 

 

* 합천향교  / 경남유형문화제  제228호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으로 현재 향교재단에서

소유하고, 관리한다.

1983.08.12 에 도지정문화재로 등재함.


세종(재위 1418∼1450) 때에 세워진 후 고종 18년(1881) 홍수로 인해 합천군청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같이 옮겨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출입문인 영귀루(詠歸樓),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明倫堂), 사당인 대성전(大成殿) 동 ·서무가 있다.

배치는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로 배치되어 총 6동의 건물이 있다.

경내에는 이 고장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목숨을 걸고 향교를 지킨 정씨 부인의 사당이 있으며,

명륜당 대청에는 각종 현판들이 걸려있어 향교에 관한 좋은 연구자료가 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생각중

 

 

그런데.... 자료를 찾다보니, 합천향교 출입문이 살짝 재구성된 모습을 발견했다.

문화재청사진을 오려붙혀 비교해본다.

 

 

 

 

 

 

 

 

들어서려는데 출입문 하단에 하마비(下馬碑)가 옛사진과 비교해보니, 담장쪽으로 뒷걸음질 쳐있는 현재의 모습이다.

담장도 시멘트돌담에서 황토돌담에 기와를 얹은 모습임을 알 수 있다.

 

 

 

 

 

 

 

담장을 쭈욱 ~~ 따라 시선을 돌리니 시골예배당이 보인다.

한적한 풍경이다.

어릴적 사촌들을 따라 이 곳을 휘젓고 다녔을터인데, 뚜렷한 기억이 엄따....ㅎㅎ ~

 

저어기 끝에 작은 사당이 임진왜란때 목숨걸고 합천향교를 지켜낸 정씨(鄭氏)부인의 사당이라고 한다.

 

 

 

 

 

 

제례는 각 향교별로 매년 봄․가을 2회씩 춘․추향제로 구분하여 거행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나라에서 주관하던 의식의 하나로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를 올리는 것인데...

2013년 5월 11일에 춘향대제가 거행되었던 현수막이 남아있다.

4개 향교(강양, 합천, 초계, 삼가)에서 기관·사회단체장과 유림 등 향교별로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속에서

춘향대제가 일제히 거행되었다.

조선시대 향교는 성현들의 제사를 올리는 것 뿐 아니라 지방의 교육기관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커다랗게 태극이 그려진 출입문 영귀루의 대문을 살짝 열어보니, 한가득 민들레홀씨들과 함께하는 명륜당이 보이고...

 

 

 

 

 

 

 

 

합천향교 마당으로 들어서서 영귀루의 뒷모습을 본다.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홀로 합천향교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들어서니.... 명륜당 마당 한 가득 클로버꽃들과 민들레 홀씨들이 수북하다.

 

 

 

 

 

 

 

합천향교는 조선 세종(世宗, 1418~1450)때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1843년(헌종 9)에 대성정(大成殿)을 중수하였고, 1881년(고종18)에 수해(水害)로 인해 합천군천을 이 곳으로 옮길 때 향교도 함께 옮겨졌다.

합천향교는 경남에서는 드물게 완전한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향교의 공간은 교육과 제례(祭禮)의 두 영역으로 나뉜다.

유생(儒生)이 학문을 연마하는 명륜당(明倫堂)과 일상생활을 하는 동,서재(東西齋)는 교육기능을 담당하고, 공자와 저명한 유학자의

위패(位牌)를 모시는 대성전(大成殿) 및 동, 서무(東西茂)는 제례기능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

건물배치는 교육공간을 앞쪽에, 제례공간을 뒤쪽에 두는 향교 건물배치의 일반적형태인 전학후묘(前學後廟)형태가 아니라

명륜당이 대성전과 나란히 세워진 특이한 형태이다. 따라서 명륜당이 마치 제수(祭需)를 준비하는 전사청(典祀廳)같은 느낌을 준다.

이것은 교육기능을 상실한 조선 후기 명륜당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이다.

 

 

 

 

 

 

 

 

 

 

 

 

 

 

 

 

 

 

 

 

 

 

 

 

 

 대성전을 들어서는 출입문